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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문화의집

공지사항

  • 일상의 아카이브 <우리집살림살이전> 열리다!!

    • 작성자
    • 등록일04.07.25
    • 조회수3,321
  • 골목이야기프로젝트 전시영역
    살림살이를 통해 발견하는 일상의 아카이브

    우리집 살림살이 展

    일 시 / 2004년 7월 24일(토)-8월 8일(일)
    오픈식/ 2004년 7월27일(화) 오후4시 북구문화의집
    장소 / 북구 문화의집 문화관람실
    기획/ 북구문화의집

    아줌마들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회 /자신의 집안 구석구석 작은 소품으로 피어나는 어머니들의 공간/작은 일상에 대한 서로의 관심으로부터 발견하는 이웃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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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구문화의집에서 기획한 전시회 <우리집살림살이展>은 이러한 어머니의 세월의 흔적과 가족을 삶의 모든 흔적을 하나하나씩 모아서 전시한다. 이번 전시회는 주민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삶의 궤적이 드러나 있는 여러 가지 물건을 통해서 이시대의 어머니의 이야기와 삶을 아카이브한다.
    지금까지 집안 구석에 별 의미없이 박혀있던 아줌마의 일상을 이웃과 서로 나누게 됨으로써 이제는 한사람의 일상이 더 이상 그녀들만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해주는 전시회이다.

    이번 기획전은 여러개의 섹션으로 테마가 나누어져 있는데 <선물>, <나의 가계부>, <살림살이>,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것>,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딸 아령이의 방>, <돼지 저금통 깨던 날>, <연애편지>, <어머님의 기도>, <사진 찍는 날>, <호롱불에 잠든 날> 등의 테마로 총 13명 어머님들의 소품들을 전시한다.

    <연장통>

    오치동에 사시는 62세의 양회명씨

    갑작스레 보일러의 물이 샌다.
    당장에 물이 세는 것도 문제지만, 이러다 밤새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으면 꼼짝없이 얼음장에서 자는 수 밖에...
    필요한 공구를 찾아 연장통을 뒤져 보지만 딱히
    저 벨브를 죄일만한건 프라이어 뿐이다.
    그거라도 어디냐 들고 나섰지만, 맞은 편의 벨브가
    함께 돌아버린다. 꼭지가 돌 듯 머리도 편치 않아 또
    연장통을 뒤적거리니, 몽끼가 보인다. 됐다.
    이제 명주실로 나사부분을 묶어서 벨브만 조이면
    된다.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지.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 파이프 렌치를 샀다.
    이젠 애 먹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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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벌로 연장을 산다는 것은 사치였다.
    어지간한 것은 있는 것으로 죄다 알아서
    처리하고, 부득불 그게 아니면 안될 것 앞에서는 철물점에 들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조그마한 연장통에는 구두를 수선할 때 쓰던 헤라,
    함석비막이를 덧댈 때 쓰던 함석가위, 나무를 자르기 위해 재단하던
    'ㄱ' 자형 철자와 4B연필. 포대를 꿰맬 때 쓰던 “송곳, 딸내미가 버린 붓을 다시 쓰고.....”
    내 몸에 손볼 것도 늘어나면서 세월이 흘러갔다.
    ‘연장통에는 사글세방에서 살던 시절부터, 전세방, 단독주책으로 옮겨가며 배불러가는 내 가족의 삶도 숨어있다.’

    <재봉틀>
    서석동 철로옆에 사시는 68세의 백상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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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갈 무렵 장만하는 혼수품 중 재봉틀은 단지 옷을 누비는 의미 이상의 것이었다.
    짐작컨대 이 것은 혹시 모르는 가정(장)의 불상사에 있어
    어머니가 된 여자로서 떠 안아야가 할 숙명,
    시부모와 아이들의 공양에 대한 마지막 도구와 같은 것이었다.
    재봉틀이 한 집의 공장이 되어 가계의 흥성함을
    일으키는 유용한 수단이었던 시대. 벌써 아득해져 갔지만
    내가 꿰메 놓은 옷을 자란 아이는 벌써 저만치 성인이 되었고.
    좀체로 헤지지 않는 옷은 재봉틀 앞에 앉는 시간도
    없게 하였다. 하지만 그 정성어린 시간의 기억들은
    재봉틀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할 것이다.

    <호롱불>
    문흥동 중흥아파트에 사시는 37세의 윤충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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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치를 떤 적 없나요?
    요란한 풀벌레 노래, 개구리 노래, 소쩍꿍 울어대는 새노래.
    모두 쫓아내고 들어선 새로운 마을에서
    그들이 다시는 오지 않게 우리는 밝은 전기등을
    놓았습니다.
    책이라도 읽으려 심지 돋구면 당장 호통을 치는
    지난 시절, 기름 값 몇푼이라지만 그 돈마저도 쉽게
    변통하지 못했던 시절.
    우리는 어둑하기 전 먼저 밥을 먹어야 했고
    어둠이 몰려오면 일찍 방안에 누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골동품 가게에서나
    겨우 구할 수 있는 이 등불은 오래 켜둔 집일수록
    지금은 더 밝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둑해서 금방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법한 그 밤이 그립습니다.

    <연애편지>
    문흥동 라인3차에 사시는 35세의 신미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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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끝을 타고 흘러가는 마음의 불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이들 가족의 편지를 보면
    도둑질을 하다 들켜버린 얼굴처럼 금새 달아오릅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 이리 사랑한 시간 없었던 적
    있었는지요? 다만 몸과 마음이 따로 가도록 수수방관 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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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앞에서 마침내 시인이었던 남자는
    그 이의 착한 아들 딸이 쫓아올 무렵
    사그러질 법도 한데 한번의 굳은 맹세와
    뜨거움은 국제선 비행기안에서, 업무출장 중
    커피숍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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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앞에서 끝내 시인일 그 사람 앞에
    훔쳐볼 사람만 망연자실할 따름입니다.
    “너는 그토록 뜨겁게 식지 않고 사랑하며 살았느냐고?”

    <시루, 채반, 석작>
    중흥동 65번지에 사시는 68세의 전정애씨

    머리카락도 돈이 되던 시절이었다. 곱게 얼개빗과
    참빗으로 머리 단장을 하다보면 몇 올의 머리카락이
    머리로부터 도망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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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모으고 모아서 박물장수에게 팔던 시절.
    어느 날 곱던 머리를 잘랐다.
    몇 푼 쥐어준 돈을 받고, 집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두리번거리다가 항아리 시루가 떠올랐다.
    저 양은 시루로 바꾸면 쉽게 깨지지도 않고 찐득거리는
    찰기도 쉽게 씻겨지니 안성맞춤일텐데.
    그래서 장만한 시루와 어느 날 시골에 모심는 품을 팔아서
    받은 돈으로 채반을 장만했다.
    둘은 사이좋게 부서지지 않고 아직도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친구같은 물건으로
    녀석들은 아마 우리집의 잔칫날과 제삿날을
    다 기억하고 있을 법 하다.
    또 하나 석작은 맏며느리를 맞아 이바지로
    떡을 곱디곱게 꾹꾹 눌러온 사돈집의
    정이 묻어있는 것이다.
    모든 정이 손끝으로 전해지던 시절의
    따스함이 항상 우리집 뒤안에 걸려있다.

    <아령이의 방>
    아령이의 방은 그동안 어머님이 아령이가 커오면서 남겼던 모든 것을 모아두었다. 그야말로 아카이빙을 생활속에서 스스로 실천하고 계시다.
    처음 아령이가 태어났을때 탯줄과 발찌 이름표에서 부터 초음파사진까지 그리고 아령이가 처음 했던 낙서, 처음 글을 배웠을때의 노트, 지금의 아령이의 각종학용품들, 그림일기, 스케치북, 아령이를 업었던 포대, 이불 등 없는 것이 없다.
    아령이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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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부인을 사랑하시는 남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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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에는 배려에 대한 따쓰한 마음이 한 아름 담겨있다.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도구로서 선물은 언제나 사람을 흐뭇하게 한다.
    그런 각별한 마음 앞에 맥없이 마음도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이제 너도 다른 아가씨가 되었으니 브로찌를 하고 의젓하게 다니라며
    주셨던 처녀적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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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큰 딸이 해외여행을 가서 고르고 골라
    끼워주던 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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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선물한번 할 줄 모르던 남편이 나이가
    먹어가더니 부쩍 건강에 신경을 쓰다 어느 날 문득
    채워준 건강 목걸이..
    당신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기어코 사주었던 목걸이.
    그런 선물을 받고 그 순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전해지고,
    그간에 슬픔도 노여움도 스르륵 소리없이 사라지는
    마술이 함께 온다.

    <낡은 의자>
    신안동에 사시는 65세의 조정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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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이 의자에 앉기만 해도 아늑하고
    편안한 시절이 있었다.
    바쁜 공장에서 잠시 담배 한 개비라도 물고서
    물끄러미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바람을 맞고 있는
    가로수를 바라보는 것이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편안함과는 달리
    길섶의 의자는 몽땅 비와 눈을 맞고 바람을 힘겹게 이기고,
    그러나 이 사람 저 사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느슨해지고 삐걱거리기 일쑤였다.
    이 놈에게 딱 맞는 못이 없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못질을 하여 겨우 바로 잡고 지지대를 새로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의자로서 숙명을 안아주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퇴역한 지금, 의자로서의 용도보다 창고 앞에
    차를 세워두고 오리무중으로 사라져버릴 운전자를
    “창고앞, 죄송합니다”란 표찰을 달고
    내 대신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내 몸을 훤히 알고 있는 의자는
    아직도 나의 친구이다.

    <신일 선풍기>
    신안동에 사시는 60세의 박용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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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간절이 그리운 계절이다.
    그나마 사방으로 뻥 뚫린 예전에는 이리 덥지 않았고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맞을 수 있었는데 이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만 가는 빌딩들은 제 스스로 바람도 거부하며
    지 건물속만 차갑게 하고 밖으로 거친 땀을 몽땅 토해 낸다.
    그래도 선풍기라도 있어 다행이다.
    헉헉거리며 거리로 나섰다가 돌아와 마루에 걸터앉아 선풍기 바람에 냉수 한사발이면
    더위는 이제 스톱이다.
    그러고 보니 선풍기의 나이도 꽤나 먹었다.
    가만있자 막내딸이 태어났을 때 잘 나가는 신일 선풍기로 샀으니 서른 다섯.
    혼자 도는 것이 외로울 법도하고 가끔은 말썽이라도 부를 성싶은데
    여직 큰 탈없이 날개도 부러지지 않고 110V로 전환해주는 도란스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오래된 낡은 것들이 새로운 것들 앞에서 맥을 못추는 시절이지만 서른 다섯 살 먹은 선풍기를 보면 그 세월을 견디면서 가족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사하는 것이 너무나 고맙기만 하다.
    몇해전에는 이 오랜 선풍기에게 새 옷을 입혀주었다. 지도 세월은 이기지 못하는지 자꾸 허물을 벗어가기에 은색으로 도색을 해 주었더니 아주 새것 같고 바람도 더 잘 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동자승>
    월계동에 사시는 53세의 배임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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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여행다니기 좋아하는 나는 산으로 들로 시간만 나면 배낭을 둘러매고 도시를 벗어났다.
    바람같은 태생적인 면도 있지만 나의 직업이 공무원이다 보니 각 시도로 출장과 산업시찰을 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99년 전남공무원교육원에 재직시 강원도로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업무를 마치고 그곳 분들과 낙산사를 가게 되었는데 강원도 원장님이 나에게 동자승 4개를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절과 나는 그다지 친한 편도 아니었고 동자승이라는 것도 나의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선물이라는 것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TV위에 나란히 올려두었다.
    식구가 많지 않은 탓에 퇴근하고 가는 집은 늘 고요하기만 하다. 그런 집에 하루를 마무리하고 가만히 동자승을 들여다보노라니 묘한 설레임이 이는 것이 아닌가. 까까머리에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리고 익살스럽게 있는 조그만한 인형을 보다보니 나까지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한 느낌이였다. 그 뒤로 나에게는 동자승 인형을 모으는 취미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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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의 산과 절을 다닐 때면 어김없이 한쌍이든 두쌍이든 동자승 인형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절에서 동자승을 사려하는데 그곳의 보살님이 "동자스님 두분 드릴까요?, 아님 어떤 분을 드릴까요?"라는 물음에 잠시 주춤했다.
    그전까지는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였는데 보살님의 그 말을 듣고부터는 감히 이것,저것이라는 호칭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인형 하나에도 존경의 의미를 담아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나 또한 '한분, 두분'으로 호칭을 바꾸게 만들었다.
    모든 가르침은 내 안에 있다 했다. 불교를 믿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있다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예쁘고 귀여운 조그마한 인형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까르르 웃어제끼며 마냥 즐거워 하는 동자승, 무술하는 동자승, 힘들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참는 동자승. 우리내 인생살이와 너무나 닮아있는 듯 하다.

    <우리 집 정원>
    문흥동 이층 한 쪽에 정원을 만드신 49세의 박미숙씨

    마당 깊은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마당 보다 더 아늑한 숲이 있다. 선물로 들어온 화분, 여행길에 산 화분, 산책길 길섶에서 분양해 온 식물 등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이만 하면 숲속의 궁전이 따로 없다.
    게다가 예쁘게 꽃을 피워 올리는 시기도 제 각각 다르고, 자라는 성격도 모두들 개성이 강하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지만 예쁜 딸아이의 미소만큼 나무와 꽃의 변화에도 우리 가족은 예민하게 기뻐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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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제주도에서 건너 온 것이나, 바닷가 해풍을 맞고 자란 풍란이나 집에 분양된지 얼마 안된 것이나 십여년을 넘긴 것이나 이제는 우리 식구와 다름없는 이들을 바라보며 물을 주고 알맞게 거름을 뿌려주며 활짝 꽃피우는 그 날, 싱그럽게 향기를 뿜어내는 그날이 있는 한 우리 가족은 언제나 행복할 것이다.
    이제 잠시간 비밀의 화원을 여러분에게 공개하는 기쁨도 온통 함께 느껴본다.

    <초희의 성장기>
    치평동 우미아파트에 사시는 40세의 임순영씨

    결코 한 삶이 가벼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만져지는 모든 것들에는 깊게 연관된 관계의 망들이
    촘 촘 하게 엮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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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쩍 부쩍 나 저 홀로 성장해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거울 속이 아닌 진짜 나의 더딘 성장을 돌아보게 하는 것들...
    가령 빛이 바래진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이나
    나름대로 폼을 잡고 섰던 유년시절부터의 사진
    A4박스에 담겨진 상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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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이에는 나를 지키고 가꾸어 주셨던 가족과 친지와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베어있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어린 시절의 일기부터
    대학의 합격증서까지 한데 모아보니
    내 몸무게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에 놀라고
    더욱 놀란 것은 그것들의 사이에서 내가 또 호흡하며
    산다는 것이다. 보여지는 내 삶의 증거물들 앞에서
    더욱 멋진 초희로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성상>
    문흥동 상록아파트에 사시는 김갑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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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마음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산다.
    어느 날 아파트를 나섰다가 쓰레기 수거장 한켠에
    홀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성모상이 보였다.
    누군가의 집에서 수많은 삶의 켜들을 지켜보고 있었을
    그 님이 오늘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것을 내가 제일 먼저 보았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다. 조심스레 성모상을 집으로 옮겨
    맨 가운데에 그 분의 자리를 마련해드렸다.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간절히 소망하는 것들...
    그 안에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의 염원으로 충만할 것이었다.
    성상들을 단순히 모시는 것으로 끝맺지 않고
    늘 그분들을 처음 모실 때의 마음으로
    그 분의 마음에 닿고자 늘 노력하며 지내는 날들은
    행복하기기만 하다.

    <소니 녹음기>
    문흥동 이층에 사시는 49세의 박미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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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첨단의 장비들은 명멸을 거듭해 왔다.
    둔탁한 돌을 깨어 날카로운 부위를 사용했던 선사인에게 돌을
    갈아 날을 세웠던 간 석기는 눈부시어 차마 바라보지 못했을 터이고
    찌르던 시대의 칼 앞에 베어내는 칼의 등장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의 첨단 병랑기였다.
    상자 같은 네모진 소리통에서 흘러나왔던 노래와
    재담에 넋을 잃었던 라디오 시절에서,
    들었던 것을 기록하고 쉼 없이 반복하는 녹음기가
    있다는 사실은 신기에 가까웠을 터이다.
    어떤 오락도 유희도 쉽지 않았던 시대,
    사랑이 깊어져 열병을 앓았던 시대,
    그녀의 곁에 있지 못한 나의 자취를
    이 첨단의 소리녹음기에 담아 보냈다.
    그립고 애틋한 시절에 선물은 첨단의 오디오에 자리를
    내어 두었지만 오래된 사랑은 항상 애절하여 행복하다.

    <가계부>
    문흥동 중흥아파트에 사시는 49세의 김정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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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들고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중 집안의 곳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머니에게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집안의 경조사를 기억해야하고, 식단은 어떻게 짜야 하며, 남편이 애써 벌어온 돈을 흥청거리는 것이 아니라 요긴한 곳에 쓰고, 전세방을 탈출하여 내 집도 장만해야 하는 것이 오로지 이 가계부 안에 들어있는 셈이니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모조리 울긋불긋한 가계부 안에 다 스며들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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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3월 22일 결혼을 하였고, 그해 4월 3일부터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였다. 하루의 날씨와 특징적인 순간들을 담기도 했고, 지금은 비록 은행에서 모든 일상들이 이뤄지지만 가족과 혹은 주변 사람들과의 돈 거래 또한 치밀하게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뜨개질을 통해 틈틈히 손을 놀려 가계에 도움이 되려 노력하기도 했고, 더욱 살뜰이 살고자 다짐하며 기록한 몇줄의 다짐들도 기억되어 있다. 하루의 기상 상태를 정리하여 첫눈이 온 날이 언제인지 알수 있고 약값과 병원비의 지출이 많은 것에 대해 고민하고, 한해의 경제 동향을 예측하며 매달 6만원의 범위에서 가계를 꾸려야 되겠다는 다부진 맹세 또한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이 가계부는 단순한 집안의 돈의 들고 나감에 대한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대끼며 살았던 시대에 대한 한 가정의 접촉과 그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기록하는 시대의 암호가 들어있는 보물창고이자 타임머신과 같은 존재로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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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전화요금이 20원하던 '84년, 전기가 KW당 61원 하던 시대, 서방에서 창평까지 왕복 버스요금은 620원, 연탄 한장은 160원 하던 시대를 되돌아보며, 그 꼼꼼함에 가리워진 한 가족의 눈물나는 생애가 스크린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감당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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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참으로 위대한 당신이여!
    당신은 그 누구도 쉽게 기록하지 못한 역사를 살림의 경제 안에 요리 저리 반추하며 모조리 안고 계시더이다.

    <65년생 주부 정00 맞벌이 가족의 외출복>
    문흥동 라인동산에 사시는 40세의 정은선씨

    옷은 한 가정의 표본이고 사회의 반영입니다.
    오래된 무덤에서 찾아낸 의복이 그 시대의 사회상을 읽는 잣대이듯
    오늘을 사는 정00씨의 가족이 차려 입는 옷은 이 시대의 타임캡슐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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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옷은 단지 입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 가족이 세상과 소통하는 의사표현의 한 단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옷걸이의 옷을 보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초반
    복식을 통한 사회의 코드를 읽고 있는 것이지요.

    그 가족의 프로필을 공개합니다.

    아버지 59년생 46살 모 전자 회사 차장
    어머니 65년생 40살 개인학습 지도
    딸 15살 중학교 2학년
    아들 12살 초등학교 5학년
    주거지 문흥지구 00아파트 32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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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흥동에 사시는 김정임씨가 10년만에 얻은 딸의 베넷저고리와 아가에게 보내는 편지

    <사진 찍는 날>

    이 코너에서 그동안 힘들고 어렵게 살림살이를 꾸려왔던 우리네 어머니이자, 여성, 아줌마의 자화상이 될 수 있는, 한번도 쉽게 가져보지 못했던 독사진을 찍는 기회를 마련하여 찾는 아줌마들에게 무료로 사진촬영을 해주어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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